이방자 씨의 무덤 (李方子さんの墓所)2012/10/27

(以下の原文〈日本語〉は、本ブログの直後記事を見てください。)

 3년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이방자 씨의 무덤을 참배하고 왔습니다.

 이방자 씨의 일본명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 씨입니다. 이 분에 관해서 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선 조선의 역사를 조금만 공부합시다. 조선은 1910년에 일본에 의해 병합되어 식민지가 되었는데 그때까지는 대한제국이란 나라이어서 황제와 황태자가 있었습니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서 제국이 아니게 되었지만 왕실은 존속되었습니다.

 식민지화된 조선과 지배자측인 일본과는 감정적으로 많은 대립이 있었는데 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일본과 조선이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고 해서 당시의 말로 ‘내선융화’ 가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 때 조선 왕실 분과 일본 황실 분이 결혼하면 좋다고 해서 조선 왕실 측은 최후의 황태자이었던 이은(李垠)씨, 일본 황실 측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씨가 뽑혔습니다.

 두 분은 三一독립운동의 이듬해에 결혼했습니다. 나쁜 말을 쓰면 정략결혼입니다.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씨는 결혼 후 ‘이방자(李方子)’ 씨가 되었습니다.

 두 분은 황족에 준하는 취급을 받으면서 도쿄에서 살고 있었으며 두 아들을 뒀지만 그 중 한 아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습니다. 1945년 일본은 패전하고조선은 해방 독립이 되었습니다. 조선 북부는 사회주의를 선택했으므로 군주제의 부정은 당연한데 남부에 생긴 한국의 이승만(李承晩) 정권도 군주제를 부정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조선 왕실의 재산뿐 아니라 왕족의 개인재산마저 다 몰수했습니다. 대신 생활비를 지급해야 하는 법이 있었는데 이승만 정권은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쿄에 있는 이은씨 내외의 귀국을 거부한 것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황족과 귀족의 신적강하 (臣籍降下-일반국민과 같은 호적에 들어가는 것) 가 이루어져서 이은씨 내외도 일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국에 돌아갈 수 없고 또 그때까지 황족 대우를 받았던 사람이 갑자기 일반사회에 들어갔으므로 사기를 당하거나 하며 많은 빚을 져서 꽤 괴로운 생활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박정희(朴正熙) 정권이 생긴 후 1963년에 이르자 이은씨 내외는 겨우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에 남편 이은씨가 숨을 거두고 과부가 된 이방자씨는 한국에서 장애인복지에 힘을 쏟았습니다. 자기가 잘하는 칠보(七寶燒)를 만들어 팔거나 칠보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해서 돈을 벌고 장애인 복지시설을 지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극히 가난한 나라였으므로 장애인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한국 사회 가운데 장애인 복지활동을 했으니 꽤 힘든 일이 많았던 것 같는데 그런 이방자 씨를 많은 한국사람들이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1989년 쇼와 (昭和) 천황이 세상을 떠난 해에 이방자씨도 서거해 서울 교외 남양주에 있는 남편의 분묘에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일본과 한국과의 복잡한 역사를 몸소 살아오시고 마지막에는 한국사회에 공헌하며 돌아가셨는데, 이 분의 생애를 알게 되니 뭔가 좀 느낀 게 있어서 성묘를 가게 된 것입니다.

 그 고장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한 해 한 번의 일년에 한 번 있는 묘전제 때 일본대사관 직원이 성묘하러 오는 정도이고 그 이외에는 참배하러 오는 일본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더 많은 일본인들이 이방자 씨 묘를 참배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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